진도의 숨은 보석 조도
보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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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푸른 새벽 ‘새떼 섬’으로의 망명
하조도 등대는 섬 속의 섬이었다. 새벽 이슬을 헤치고 섬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등대로 차를 몰았다. 깎아지른 벼랑 끝을 곰솔과 동백나무들이 에두른 해안길 풀숲에는 유채꽃과 노란제비꽃 등 들꽃들이 곱게 피어 있다. 간밤에 내린 비로 흙길은 촉촉이 젖어 있다.
1909년에 세워진 이 등대에 이르자 호수같이 잔잔하게 펼쳐진 다도해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새벽잠에 빠져 있다. 섬 동쪽 멀리부터 물안개를 걷어내고 바다가 희붐하게 밝아오면서 밤새 고기잡이에 지친 배들이 섬으로 총총히 귀항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짙은 구름 탓에 붉은 불덩어리의 행위예술을 볼 수가 없었다. 섬은 고집스레 낯선 이에게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한반도 남서단 끝자락에 자리잡은 조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망망대해에 크고 작은 154개 섬들이 마치 ‘새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230개 섬을 끼고 있는 진도군 조도면으로, 우리나라 면 단위로는 가장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조도군도의 어미섬인 조도는 그동안 바로 턱 아래 놓인 관매도의 유명세에 가려져서 관광객들이 관매도로 가려고 배를 대는 경유지였다. 그렇기에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조도 도리산(210m)과 하조도 돈대봉(230m) 및 등대, 한가롭고 자그마한 어촌들, 결 고운 모래사장과 빽빽한 송림이 어우러진 해수욕장들이 숨어 있다. 조도는 상조도와 하조도로 나뉘어 있는데 면사무소가 있는 하조도가 조도군도의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다. 예전에는 상·하조도를 배로 건넜으나 지난 96년 두 섬을 조도대교가 이어 왕래하기가 쉬워졌다.
하조도 등대를 나와 상조도 도리산으로 길을 잡았다. 이 섬을 다녀간 이들이 ‘한국의 카프리’로 이름 붙인, 조도 주변의 다도해 섬들을 한눈에 보고 싶었다. 유채꽃이 노랗게 물들인 해안도로는 굽이굽이 반농반어의 한가로운 시골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도대교보다도 더 길다는 조도대교를 건너자 바로 상조도로 이어졌다. 상조도 분교를 지나 여미항에 가기 직전에 왼편으로 도리산 전망대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과 마주쳤다. 이 전망대는 하조도의 돈대봉 정상과 함께 다도해로 뜨고 지는 붉은 햇덩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도리산 정상의 케이티(KT) 기지국 바로 아래 놓인 통나무 전망대에 오르자 하조도와 관매도, 병풍도, 나배도,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눌옥도 등 새떼 같은 섬들이 희뿌연 안개에 젖어 있다. 강경복(50) 조도면장은 “날씨가 좋으면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 한라산 중턱이 보인다. 조도가 낯갈이를 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조도는 임권택 감독이 만드는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무대로 떠오르기도 했다. 임 감독은 촬영지를 물색하러 지난해 초 조도를 다녀갔다. 푸른 바다 위에 올망졸망 떠 있는 작은 섬들, 섬과 섬 사이를 헤집고 한가롭게 다니는 고깃배들. 하늘과 바다가 만나고, 바다와 땅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 그곳에 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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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진도군)/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하조도 등대는 섬 속의 섬이었다. 새벽 이슬을 헤치고 섬 남동쪽 끝자락에 자리잡은 등대로 차를 몰았다. 깎아지른 벼랑 끝을 곰솔과 동백나무들이 에두른 해안길 풀숲에는 유채꽃과 노란제비꽃 등 들꽃들이 곱게 피어 있다. 간밤에 내린 비로 흙길은 촉촉이 젖어 있다.
1909년에 세워진 이 등대에 이르자 호수같이 잔잔하게 펼쳐진 다도해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새벽잠에 빠져 있다. 섬 동쪽 멀리부터 물안개를 걷어내고 바다가 희붐하게 밝아오면서 밤새 고기잡이에 지친 배들이 섬으로 총총히 귀항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짙은 구름 탓에 붉은 불덩어리의 행위예술을 볼 수가 없었다. 섬은 고집스레 낯선 이에게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한반도 남서단 끝자락에 자리잡은 조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망망대해에 크고 작은 154개 섬들이 마치 ‘새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230개 섬을 끼고 있는 진도군 조도면으로, 우리나라 면 단위로는 가장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조도군도의 어미섬인 조도는 그동안 바로 턱 아래 놓인 관매도의 유명세에 가려져서 관광객들이 관매도로 가려고 배를 대는 경유지였다. 그렇기에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지 모른다.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조도 도리산(210m)과 하조도 돈대봉(230m) 및 등대, 한가롭고 자그마한 어촌들, 결 고운 모래사장과 빽빽한 송림이 어우러진 해수욕장들이 숨어 있다. 조도는 상조도와 하조도로 나뉘어 있는데 면사무소가 있는 하조도가 조도군도의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다. 예전에는 상·하조도를 배로 건넜으나 지난 96년 두 섬을 조도대교가 이어 왕래하기가 쉬워졌다.
하조도 등대를 나와 상조도 도리산으로 길을 잡았다. 이 섬을 다녀간 이들이 ‘한국의 카프리’로 이름 붙인, 조도 주변의 다도해 섬들을 한눈에 보고 싶었다. 유채꽃이 노랗게 물들인 해안도로는 굽이굽이 반농반어의 한가로운 시골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도대교보다도 더 길다는 조도대교를 건너자 바로 상조도로 이어졌다. 상조도 분교를 지나 여미항에 가기 직전에 왼편으로 도리산 전망대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길과 마주쳤다. 이 전망대는 하조도의 돈대봉 정상과 함께 다도해로 뜨고 지는 붉은 햇덩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도리산 정상의 케이티(KT) 기지국 바로 아래 놓인 통나무 전망대에 오르자 하조도와 관매도, 병풍도, 나배도,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눌옥도 등 새떼 같은 섬들이 희뿌연 안개에 젖어 있다. 강경복(50) 조도면장은 “날씨가 좋으면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 한라산 중턱이 보인다. 조도가 낯갈이를 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조도는 임권택 감독이 만드는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무대로 떠오르기도 했다. 임 감독은 촬영지를 물색하러 지난해 초 조도를 다녀갔다. 푸른 바다 위에 올망졸망 떠 있는 작은 섬들, 섬과 섬 사이를 헤집고 한가롭게 다니는 고깃배들. 하늘과 바다가 만나고, 바다와 땅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 그곳에 조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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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진도군)/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